역사는 내게 어릴 적부터의 놀잇감이었다. 아버지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집에는 역사관련 서적이 많았고, 딱히 가지고 놀 것이 없었기에 그것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자연히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고대의 유적은 훼손되었고 문헌은 불탔으며 역사는 타의에 의해 쉽게 왜곡된다.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연구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연구를 통해 과거를 밝혀내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나는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다.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태어나 살아가는 곳에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흥미를 가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굳이 복잡하게 다가갈 필요는 없다. 나는 과거를 시뮬레이트하겠다.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지만 과거에는 분명 누군가가 그 땅 위를 달리고 싸웠고 살아갔다.
학술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을 원했다면 내 서재조차도 충분하다. 오히려 관련 자료의 풍부함은 월등할 것이다.
그런 것을 위해 떠나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이 시간과 공간을 살고 있는 것처럼 이 흐름의 앞을 살아간 사람들도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머리로 아는 것 뿐 아니라 직접 느끼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하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실은 내돈 안내고 외국 구경이나 해보자는 심보였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내 돈이기도 하지만.←
곧 공항에 도착했고, 비행기는 중국을 향해 날아올랐다.
첫번째 날 8/1성수기인지라 비행기 구하기가 힘들었는지 심양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청도를 거쳐 국내선을 갈아타야만 했다. 중국 비행기는 내부는 지저분했고, 기내식은 난감했지만, 승무원은 합격이었다(…).
그 중 한 명. 물론,
사진의 사용은 허락받지 못했다. 말이 안 통해서(…).목적지는 국경도시 단동.
첫 일정은 관동군의 무기저장고로 썼다는 석회동굴이지만 동굴의 과거와는 상관없이 냄새가 지독하다.
동굴의 종유석 몇몇은 도굴꾼들이 베어갔는지 보트의 안전운행을 위해 제거했는지 잘린 밑둥이 보였다. 크기는 컸지만 그것 뿐.
그 앞에는 관광객을 노린 시장이 있었다. 파는 물품은 꽤나 이국적인 과일들, 삶았는지 튀긴건지 알 수 없는 가재. 그 외 기기묘묘한 음식들.
과일은 이렇게 생겼다.중국의 화장실은 호텔 등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구식이다. 어릴 적 1년여 간 그런 곳에서 지낸 경험은 있지만 버티는 것과는 무관계. 왠만해선 참을 수 있는 성질도 아니고, 고생이다.
이 곳의 화장실에서 나는 다시 여자로 오해받았다.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려 하자 콧수염을 기른 중국 아저씨가 날 막는다. 외국인은 화장실도 가지 말란 거냐.
잠시 날 쳐다보더니 "남?!"하고 외친다. 男이란 뜻이겠지. 처음부터 좀 자세히 보란 말이다. 머리만 길면 다 여자냐.
화장실에서 나와 잠시 쉬고 있자니 중국 꼬맹이들이(소녀라고 표현하기도 뭐시기하게 어리다.) 화장실에 숨어서 날 쳐다본다.
훗. 어린 것들이 잘 생긴건 알아가지고(…).
이 화장실이 그 화장실.비행에 시달려 버스에 태워져 호텔에 실려갔다. 중국이라 모텔 정도가 아닐까 했지만 진짜 호텔이다.
식사 때, 중국 음식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 진짜 중국요리를 내가 즐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고기볶음을 씹는 순간 부서지는 갑각류의 껍질을 느끼며 모든 희망을 버렸다.
그리고 귀국하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굶주림을 체험했다. 그래도 체중에는 변화가 없었다.
식사 이외에 어떤 경로로 칼로리가 체내에 들어왔는지는 의문이다(…).
두번째 날 8/2호텔에서 나오는 데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여자가 쓰러져 있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호텔에 벽돌을 던진 여자에게 공안이 과도한 폭력을 가했다고 한다.
역시 중국은 개방했다지만 아직 통제사회, 경찰국가다. 벽돌은 왜 던졌을까.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버스다. 땅이 넓으니 가볍게 이동하는데도 2, 3시간이 걸린다. 나는 맨 뒤에 앉았던 터라 중국의 환상적인 도로사정으로 버스가 춤을 출 때마다 머리와 버스의 천장과의 격렬한 스킨쉽을 허용해야만 했다. 앞으로 옮기자 조금만 졸면 얼굴을 옆 창문에 충돌시켜야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바로 옆 밭으로 떨어지는 낙뢰를 감상하며 즐거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 우리의 모든 일정을 책임진, 우리에게
이런암울한 드라이빙을 선사한 우리의 운전기사 아저씨를 우리는 그 완벽한 운전실력에 찬사를 보내며 그를 어메이징 드라이버(Amazing Driver)라 부르기로 했다.
우리의 어메이징 드라이버.이것이 그의 애마 니 하오(가칭)고구려 시대의 산성을 보러 출발한다. 도착하니 보이는 것은 만리장성의 최동단, 80년대에 중국 정부가 산성의 위에 새로 세웠다 한다.
이거다. 친절히 한글로까지 표기해 놓았다.역사적으로 진시황 이전부터 동이(東夷)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쌓여지기 시작한 만리장성의 동쪽은 베이징 근처에서 끝난다.
역사의 날조(Fake)의 시도이다. 이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의 실제다.
역사는 늘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다 하지만 완전히 거짓된 날조는 불가능하다.
진실은, 거짓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가졌기에, 아무리 논리적으로 끼워 맞추려 해도 어딘가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다소 축소와 과장이 있었다 해도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어떻게 될까. 국가 규모로 역사를 조정할 의지를 가진다면 그것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일까. 아마도 내 다음 대에 가야만이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역사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과거의 경험에서 미래로 가는 조언을 얻는 가이드라인으로서?
있었던 일을 밝혀내는 학문으로서?
문헌에 기록되는 역사와 별개로 우리는 우리의 과거가 이어온 기반에서 태어났고 삶을 계속하며 미래를 잇는다. 그것이 살아있는 <역사>다. 이러한 실제와 학문으로서의 역사가 어긋나기 시작한다면 그 파문은 거대할 것이다. 그 영향은 우리에게도 미칠 것이며, 뒷 세대에까지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지킬 의무와 권리가 있으며 미래인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이러한 역사의 날조를 용인한다면, 그리하여 일반화된다면 미래의 인류는 거짓을 진실이라 알 것이며 이미 실제를 잃어 그 근원을 사람들의 인식에 두고 있는 과거는 완전히 존재를 소멸당할 것이다.
인류는 자신들의 바탕을 영원히 잃을 테고 그것은 곧 인류 전체의 불행이다.
어떠한 이유가 있다 해도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압록강으로 갔다 북녘의 여성동무들과 만났다. 조선족인 줄 알았지만 북한에서 물품 구매를 위해 국경을 넘어온 듯, 이런 일은 빈번할 듯 하다. 역시 남남북녀다.←
의외로 북한 사람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배를 타고 강을 돌며 건너편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생각했던 것 보다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배를 타고 있는 북녘 동무들이다.중국은 한국보다 한시간 빠르다. 단동과 여기서 보이는 신의주는 분명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강은 시간을 나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시계바늘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다름은 시간에만 국한된 것일까.
새로운 호텔에 묵었다. 점점 급이 낮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의 판단이 틀리길 바란다.
무려 길 건너에는 노래방도 있었다. 그것도 한 두 곳이 아니다. 물론 가 봤다(…).
세번째 날 8/3호텔의 조식은 늘 같다. 찐 오리알과 달걀, 중국풍 빵. 가끔 우유와 식빵. 그리고 흰 죽과 몇 가지의, 나로선 기괴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중국 음식들.
오늘 아침도 빵만으로 해결했다. 만국 공통의 호텔 조식, 밀가루 음식에 감사를.
중국 여행은 음식과 샤워시설과의 전투다. 음식은 양보한다 해도 호텔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상 이렇게 샤워시설이 부실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이런 식이다.지금은 오녀산성이라 불리고 있는 옛 졸본성으로 간다. 중국의 역사로 유네스코에 올랐다고 하던가. 고구려의 초대 수도라 하는데 올라가는 게 꽤 힘들다. 끝내는 바위절벽 사이의 아슬아슬한 틈새 사이를 지나가기까지 했다. 오르고 난 후에 보니 바로 옆에 평탄한 다른 길이 있었기도 했고.(…)
이 성을 쌓은 기술은 당시의 일반적 축성기술보다 한 세대 앞섰다 할 수 있겠다. 그 시대에서 본다면 첨단 공법이었겠지.
내려가는 건 더욱 힘들다. 내려가는 길 조차 외길이며 급경사.
이렇다.이 성은 확실히 천혜의 요새다. 방어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하지만 사람이 거주할 만한 곳은 아니다. 아마도 일반 시민들은 다른 곳에서 생활했겠지.
이동하는 사이에 도로변의 조선족 마을을 들렀다.
조금 큰 아이들은 길가에서 제기차기를 하고,조금 작은 아이들은 오목을 두고 있었는데 이것이 우리와 공유하는 문화인가. 솔직히 어떤 점을 봐야 우리와의 동일성을 찾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국 대표 대 조선족 마을 대표로 오목 대결이 펼쳐졌고,
우리가 졌다.져 준 것인지 진 것인지는 아직 수수께끼다(…).
가장 오랜 기간동안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시로 간다. 국내성의 성벽은 아직 남아 있었고 그 안은 현재 시민들이 주거하는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벽은 이전 자신의 배척대상이었던 중국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중이다. 그러나 이주민이 아닌 이상 옛 고구려 유민의 후손일 수도 있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시민을 지키는 것이 성벽의 본래 역할이니 문화재로 보호받는 것보다는 나은 운명이라 볼 수도 있겠다.
중국 시민들도 우리를, 우리도 중국 시민들을 쳐다보았다. 나라가 다르고 종족이 달라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은 모두 같은 분위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호텔로 가자 어제부터 느끼기 시작한 불안감이 현실로서 나를 덮쳐왔다. 씻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자. 내일의 호텔은 어느 정도일 것인가. 두려울 정도다.
밤의 중국 거리를 탐방하는 것은 갑작스런 배탈로 포기했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나의 소화기관은 외국에서 비로소 그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은 한국 음식만 먹지 않았던가(…).
홀로 방에 남아 있자니 심심해 TV를 켜자 전의 호텔과는 달리 한국 방송은 나오지 않는다.
집에 전화나 해 볼까 했지만 호텔 전화는 외부로 연결되지 않고, 데스크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 다음 날을 위해 수면을 취하자.
네번째 날 8/4버스로 5분,10분 이동하는 횟수가 많다. 역시 가장 오랜 기간동안 수도였던 도시라 뭔가 다르다. 이 정도면 도시 자체가 유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
장군총으로. 생각보다는 작았지만 역시 크긴 컸다. 동방의 피라미드라 하던데 이집트에 가본 적이 없어 비교할 수는 없지만 피라미드와 비슷한 형태이긴 한 듯 하다.
이게 아니라.
이게 아니라.
이거.버팀목 역할을 하는 기둥 하나가 건축 자재로 사용되어 그 덕에 균형이 맞지 않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공법 자체가 돌과 돌을 끼워 맞춰 붕괴를 막는 방법을 채용했다지만 느리지만 한쪽으로 무너지는 중이다.
버팀목이 없어 무너진다면 버팀목을 넣으면 될 것 아닌가. 관리 당국은 이 유적이 무너지길 기다리고 있는 걸까, 관심이 없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안목을 가진 자를 만나지 못한 불행한 문화재들의 말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운명이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또한 제국 붕괴 후의 암흑기에 건축 자재 조달장으로 변해 지금은 뼈대밖에 남지 않았고, 비잔틴의 고도 콘스탄티노플 또한 터키의 정복 후 많은 수모를 당했다.
슬픈 일이다.
바로 옆은 광개토태왕릉과 그 기념비이다. 장군총이 장수왕릉이라는 추측이 옳다면 부자가 같은 곳에 묻혔으니 장수왕은 죽어서도 아버지에게 혼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태왕릉에서 작은 석재 하나를 슬쩍. 나같이 염치없는 관광객이 늘어난다면 언젠가 이 왕릉도 뼈대밖에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제하자.
내부만은 두 릉이 비슷해 돌관 두 개가 뉘어져 있는 것 뿐이다.
비석은 건물로 보호되고 있다. 유명한 내도해파(來渡海波)의 문구를 찾아보려 했으나 어느 면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근래에는 적외선 검사에 의해 이전의 첨삭론이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한다만 나는 일개 학생일 뿐. 나로서는 진실을 알아낼 도리가 없다.
이 곳에서 미소녀 A, B를 만났다. 자매로 추정된다. 아쉽게도 사진은 찍지 못했다(…).
고구려의 산성, 이 산 속에도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장사가 생계 수단일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지라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 궁금한지라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포도밭이 있었다. 아마도 상품작물을 재배해 판매하는 듯 하다.
이곳은 순수하다. 순수한 만큼 결여되었다. 아직 물질에 찌들지 않았다는 것은 물질을 향유할 수도 없었다는 말이다. 순수.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는 자의 입장일 뿐이다. 그들의 삶의 형태는 그들의 선택의 결과일까? 아니다. 그저 그렇게 태어났기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 것이다.
그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그들은 누리고 있지 못하다. 그것이 중국의 통제사회의 어쩔 수 없는 결과이며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다.
그들 중국이 지금까지와 같은 발전을 계속하기를 원한다면 현재 소외받고 있는 내륙지방과 변경지역에 대한 관심을 늘려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해안지방과 다른 지방과의 불균형이 심화된다면 중국은 더 이상 하나의 중국일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도 그들이 통일된 국가를 이루었던 기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타국인으로서 이렇게 참견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결국 고생하는 것은 힘없는 사회의 밑변에 속하는 자들 뿐이다.
역사가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그런 것은 변하지 않는가. 저 성은 무엇을 보아 왔을까. 천 수백년을 지내 온 산성 앞에서 생각해 본다.
이 곳에서 미소녀 C를 만났다. 장래가 상당히 기대된다(…). (외국까지 가서서 뭐하고 다니는 거냐!)
환도산성은 기능적으로 양호하다. 한때 수도였던 적도 있었기에 그런지 본래의 목적인 방어의 기능에 충실하며 매우 효과적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성문을 공격하다가는 3면에서 역공을 받게 되는 구조이며 능선을 따라 짓지 않고 공격하기 힘든 형태로 성벽을 건설했다.
성의 망루의 유적에는 천년도 더 지난 기왓장들이 마치 어제 떨어진 듯 여기저기 박혀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하나를 슬쩍.
내일은 백두산, 야간열차로 이동한다. 침대차는 처음이라 기대된다. 과연 어느정도 나를 실망시킬 수 있을까.
여기 통화에서 우리는 4일 동안 함께한 현지 가이드 분과 헤어진다. 열심히 우리를 도와주셨던, 중국인들을 겁에 질리게 하셨던(…)
최용관 가이드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 분은 현지에서 대학 교수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교수 봉급은 박봉이라 가이드를 부업으로 하신다 하는데, 한국의 교수 사회와는 참 다르지 싶다.
3층 침대는 의외로 자기 편했다. 역시 몸속 깊이 흐르는 서민의 피. 천장에 머리가 부딪히는 것만 빼면 편하게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얌전히 수면을 취했는지는 모를 일이다만.
5일째부터는 다음 기회에.
이글루스 가든 - 세계를 내 발로 돌아다녀 보자written by 도박면상(http://etchild.egloos.com)